객석에서 터져 나온 기침 소리…"계속해" 피아니스트는 되뇌었다

입력 2024-01-18 17:37   수정 2024-01-19 02:56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고 아끼는 ‘머글’(해리포터에 나오는 단어로 보통의 사람이라는 뜻)로 연주를 접하고 느끼는 감상에 좀 더 음악적이고 지적인 깊이를 더하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음악을 즐기는 방식에 있어 정답은 없다. 하지만 ‘덕후’를 지향하는 1인으로서 지식이 결여된 감상을 내놓기란 여간 꺼려지는 일이 아니다. 머글과 덕후 사이 어느 즈음에서 음악 감상 여정에 지적인 태도 한 스푼을 더하려면 독서가 제격이 아닐까. 새해 더욱 풍요로운 덕후 생활을 위해 곡, 작곡가, 나아가 연주자와 레코딩 등에 대한 도서 5종을 소개한다.(본 추천 글은 출판사 및 작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30대 평범한 직장인·클래식 애호가
조율의 시간
이종열

같은 곡도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새롭고 다르게 들리는 것이 바로 클래식 음악의 묘미 중 하나다. 가장 먼저 와닿는 차이점은 바로 음색이다. 어떤 피아니스트는 영롱하고 반짝이는 소리를 내지만 또 다른 피아니스트는 담백하고 순연한 소리로 곡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또 어떤 연주자는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 대신 ‘뵈젠도르퍼’ 피아노만을 고집하기도 한다.

최근 아연실색한 음색과 ‘넘사벽’의 프레이징으로 레전드 내한 연주를 선보인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은 본인의 피아노를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뿐만 아니라 조율용 장비도 늘 휴대한다고 한다. 왜 그런지, 연주자마다 악기마다 발현되는 차이가 어디에서 어떻게 비롯되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많았는데 <조율의 시간>을 읽고 꽤 많은 지식을 얻었다.

대한민국 피아노 조율 명장 1호인 작가는 이 책에서 건반의 무게, 페달의 높이, 홀의 음향 상태에 따른 보이싱 등 피아노 조율의 실제를 다루지만 머글로서 더욱 재미있는 부분은 세계 유수 연주자들과 악기를 조율하며 경험한 에피소드다. 좋아하는 피아노 연주자가 있다면 그 연주자의 음색과 주법을 떠올리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
알렉상드르 타로 지음, 백선희 옮김

복잡한 곡을 저렇게 휘황하게 연주해내는 무대 위 솔리스트들을 보면서 그들의 내면은 어떤지 무대 밖에서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궁금한 것이 인지상정이다.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는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에서 전 세계 크고 작은 홀에서 혼자 무대에 올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내면을 가감 없이 서술한다. 박수갈채와 환호에 곧장 이어지는 고독과 침묵, 이어지는 비행과 연주회, 견디기 힘든 시차와 그럼에도 지켜내야 하는 음악적 과정이 담담하게 이어진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의 대기실에서, 연주 후 숙소에서, 녹음실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자세하게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유명한 홀과 음악 축제에 대한 타로의 견해였다. 객석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대한 피아니스트의 심경도 재미있다. 그의 기준에서 최고의 홀은 보스턴 심포니홀이고 함께 연주하고 싶은(?) 지휘자는 야니크 네제 세갱이다. 좋은 홀에선 객석의 박수 소리로 관객의 만족도를 가늠할 수 있고, 연주 중 기침 소리, 가래 소리, 속삭임까지 연주자에게 전부 전달돼 연주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피아노를 듣는 시간
알프레드 브렌델 지음, 홍은정 옮김

타로의 책을 통해 연주자의 섬세하고 때로 신경질적이기까지 한 내면을 엿봤다면 알프레드 브렌델의 <피아노를 듣는 시간>에서는 음악과 삶에 대한 거장의 넉넉한 관조를 읽을 수 있다. 아흔이 넘은 피아니스트 브렌델은 이 책의 독자를 이제 막 음악인으로 걸음마를 시작한 후배 연주자로 상정한 듯하다.

어떤 태도로 음악을 대해야 하는지, 각 작곡가가 악보에 지시한 여러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고 음악에 반영해야 할지에 대해 따뜻한 어투로 조언한다. 슈베르트와 슈만의 대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만큼 이 두 작곡가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단순함, 고요, 피아노 협주곡, 그랜드 피아노 등 여러 키워드를 주제로 간결하게 할아버지의 지혜를 설파한다. 읽는 순간 곧바로 브렌델의 음악처럼 고요하면서도 명료한 정서가 만들어진다.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수많은 음악과 연주, 그 제각각의 개성이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맛깔나는 단문과 만나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는 과거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라는 책도 출간한 바 있는 유명한 ‘성공한 덕후’이다. 그가 수집한 수많은 LP는 디자인도 제각각이다. 곡목도 별처럼 많은데 오케스트라, 지휘자, 연도별로 이렇게나 많은 레코딩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생경하기까지 하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의 광활한 감상 커버리지다. 버르토크와 플랑크의 교향곡은 물론이고 돈 후안, 카르미나 부라나 등의 오페라, 바이올린 소나타, 피아노 소나타와 피아노 5중주, 현악 4중주 등 실내악까지 세상의 모든 클래식 음악을 섭렵했다. 각 레코딩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간명하게 짚어나가면서 호불호 요소를 정리한다. 덕후가 아니더라도 쉽게 읽을 수 있다.
크로이체르 소나타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기주 옮김

톨스토이와 베토벤이라니 어딘지 닮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조합이 아닌가.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독일 음악의 거장 베토벤의 작품 ‘크로이처 소나타’를 모티브로 삼아 치정극(!)을 썼다는 점이 재미있어 추천 목록에 올렸다.

‘크로이처 세계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체코의 작곡가 레오시 야나체크는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에서 영감을 받아 ‘크로이처’라는 이름의 현악 4중주를 작곡했다. 음험하면서도 익살맞고 때로는 처절한 멜로디와 다이내믹함이 제법 소설과 닮았다. 원작인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그를 잇는 톨스토이의 중단편 소설, 이어 세계관 완성본인 야나체크의 현악 4중주를 번갈아 감상하면서 예술가들에게 상상력이란 무엇인지, 그 불꽃은 어떻게 타오르게 되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좋은 감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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